왜 헤리티지(Heritage)인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을 검색해보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어지고 있는 가톨릭 성당’이란 해설을 접할 수 있다. 여기서 ‘지어지고 있는’ 이란 표현이 흥미롭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Antonio Gaudi)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한 이 성당은 1882년 그가 서른 살 때 공사를 시작해 1926년 사망할 때 까지도 일부만 완성한 상태였는데, 무려 1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업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도 모른다. 20세기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리는 가우디의 숨결이 묻어나는 이 건축물 아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일생의 버킷리스트로 삼은 관광객들로 바르셀로나는 늘 붐빈다. 옛 건물을 허물고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짓고, 30년 정도가 지나면 부수고 재건축 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들에겐 희한한 일 같지만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입장료를 바탕으로 아직도 건축 중인 이 건축물 자체가 ‘내가 바로 헤리티지(Heritage)’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브랜드에 있어 헤리티지(Heritage)란, 말 그대로 오랜 세월 한 브랜드가 만들어 낸 탄탄한 유산이며 브랜드 가치다. 그 가치는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일단 가치를 인정받아 궤도에 오르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만든 사람은 사라져도 브랜드는 열광하는 사람들에 의해 영속된다. 치열한 경쟁과 불황의 터널 속에서 브랜드 생존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경영자들에게 ‘헤리티지’라는 단어는 어쩌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대에든 마켓에서의 경쟁과 불황은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오래가지 못할 브랜드라면 차라리 빨리 접는 것이 여러 모로 유익하다. 진정한 경영자가 할 일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구성원들이 혼을 다해 브랜드를 사랑하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판매가 아닌 브랜드의 문화 구축을 지휘해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헤리티지’란 브랜딩의 방법이 아닌 잘 진행된 브랜드 문화 구축 활동의 결과물이다. 곧, 헤리티지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들의 ‘문화’ 그 자체인 것이다.
헤리티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오랜 기간 역사를 쌓아나가며 지속하고 있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오너의 죽음이나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큰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브랜드의 가치와 생명력이 잘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경영자의 뛰어난 리더십이나 시장 경기의 흐름을 잘 탔다거나 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것은 ‘브랜드가 리더십을 갖는다’는 의미로 ‘브랜드 십(Brand Ship)’이라고 정의된다. 브랜드 십은 기업의 평균수명이 20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브랜드가 주도적으로 자생력을 갖고,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브랜드의 주체가 브랜드 자신이 되는 것으로 ‘우리 브랜드다운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잘 정리된 기준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 브랜드 내부적으로 형성된 체계화된 동인이 환경과 변수를 뛰어넘어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브랜드 자체가 회사의 리더가 되고 브랜드 문화를 중심으로 한 브랜딩 전략이 잘 펼쳐지면 브랜드의 품격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이처럼 정교하게 계획되고 추진되는 헤리티지 전략은 지속적인 관계로 소비자와의 신뢰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브랜드를 헤리티지 브랜드로 가는 선순환(善循環) 구조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준다.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점차 높아지며 이 시대에 있어 품질은 모든 브랜드가 당연히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품질을 제외하고 브랜딩을 논할 때의 핵심은 “어느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더욱 강력한 인식을 심어줄 것인가”를 경쟁하는 마인드쉐어(Mind Share) 관리다. 즉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결과라고 봤을 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브랜드 미션 ? 브랜드 콘셉 ? 브랜드 체험 ? 브랜드 이미지> 의 순서로 브랜딩을 구축해 나간다. 브랜드의 미션을 통해 브랜드의 콘셉이 세워지고, 그 콘셉을 유지하며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소통(체험)을 통해 브랜드가 탄탄해지고 결국 강력한 이미지가 구축된다. 이미지가 강력해지면 브랜드는 단순한 하나의 상품이 아닌 친구가 되고, 문화가 된다. 이 순서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여정과 비슷하다. 존경 받는 사람은 인생의 미션을 세우고, 인생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실천하고 인생을 헤쳐나가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되어 간다. 그리고 그만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그 존재만으로도 기품이 느껴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된다.
어느 순간 브랜드가 관계자의 콘트롤 수준이나 범위를 넘어서서 소비자들 스스로가 브랜딩의 주체로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면 헤리티지가 생겨나고 있다는 증거다. 그 힘은 살아서 성장하는 생명력으로 소비자의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잡는다. 가우디가 인간의 유한한 삶 때문에 지속하여 건축물을 만들 수는 없어도 가우디의 철학은 후배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건축을 지속하는 힘으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브랜딩 책임자나 마케터들도 브랜드에 혼을 집어넣는 노력이 필요하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논란처럼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잃지 않으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년이 넘는 브랜드들 중에 장인이 만든 브랜드가 많은 이유는 단기간의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그들의 장인정신이 브랜딩의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당장의 헤리티지 구축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으로 비유하면 성장에 필요한 체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과 같은 브랜딩의 기본 요건들이 필요한데 세가지로 요약하자면 ‘브랜드 정통성’, ‘브랜드 스토리’, ‘브랜드 가치’를 들 수 있다.
첫째, 브랜드는 기술과 능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이 고집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우리 브랜드는 이것만은 목숨 걸고 지킨다” 라는 원칙이다. 그것은 곧 브랜드의 구성원과 사용하는 소비자의 자부심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들이 가진 공통분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통성이자 신뢰이다.
둘째, ‘브랜드 스토리’란 그 브랜드의 철학과 메시지를 얼마나 적합하고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토리(Story)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이며 브랜드의 히스토리(History)가 되고 전설이 되기 때문이다. 100년 이상 된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모두 전설적인 스토리들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들을 순간적으로 현혹시키는 가십성 이야기에 의존한 것이 아닌 자기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이야기한 소통의 결과다. 이러한 소통의 특징은 스토리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소비자와의 쌍방향적인 매개체라는데 있다.
셋째, ‘브랜드 가치’는 시대를 초월해 시장에 적응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 받는다. 즉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의 파도를 잘 타고 넘는다는 뜻이다.
현재의 브랜딩은 다양한 미디어와 채널, 개인화된 디지털 기기의 영향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온라인으로 실시간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흐름도 너무 빨라, 소비자를 특정한 집단 군으로 분류하거나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브랜드가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소비자를 우롱했다가는 신뢰에 금이 가며 부정적 이미지의 역습을 당하는 사례도 많기에 브랜더들은 트렌드의 이해와 소비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답은 없어도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소비자를 브랜딩의 주체로 참여케 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는 생산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가진다.
‘스턴버그(Sternberg)’는 소비자의 브랜드 애착 심리행동 분석을 통해 진정성 있는 소비자와의 소통은 ‘사랑’에서 시작됨을 찾아냈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가치를 느낄 때는 브랜드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마치 사람처럼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친밀감과 브랜드에 대한 열망과 몰입의 감정인 열정, 브랜드와 애정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의지인 책임감 등이 균형 잡힌 정삼각형을 이룰 때 브랜드와 소비자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리해진 소비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들에게 귀 기울이며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랑의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복잡하고 빠른 트렌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하나의 원칙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지며 꾸준한 노력과 관리를 통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쌓여온 이미지가 헤리티지의 파워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표1] 헤리티지 형성을 위한 루이까또즈 브랜딩의 연도별/ 단계별 적용 및 변화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