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창조하는 부드러운 힘

<왼쪽부터 부크라 자라르(bouchra jarrar), 피비 필로 (Phoebe Philo),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 잔느 랑방(Jeanne Lanvin),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코코샤넬(Coco Chanel)이 과거오뜨 꾸뛰르의 혁신을 가져왔다면, 오늘날에는 부크라 자라르(bouchra jarrar), 피비 필로 (Phoebe Philo),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가 이들의 뒤를 이어 패션계에 새로운 채색을 하며, 여성들의 현실세계를 재조준 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화장기가 거의 없는 깨끗한 피부에 화려함 보다는 차분함을 선호한다. 패션쇼의 피날레 무대인사를 할때면 어김없이 팬츠 차림에 셔츠나 라운드 칼라의 티셔츠 복장을 한다. 특히, 하이힐 차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항상 신중하며, 세상의 미래와 아이들 그리고 그녀 자신들의 삶에 대해 걱정한다. 또, 허세와 겉치레 보다는, 미니멀리즘에 정교함과, 실용적인 엘레강스함뿐 아니라, 고급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인 ‘이지 시크(Easy chic)’적 요소를 불어 넣는다. 그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패션’보다는 ‘스타일’이며, ‘레드카펫’ 보다는 ‘일상’ 이다. 때문에, 이들은 트렌드를 향한 경주나 옷 소매의 디자인적 효과 보다는 재단이나 원단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한다. 명품이라는 럭셔리한 세계에서 심플함으로 디자인을 하는것이다. 프레따 포르떼(pret-a-porter)의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한 이들의 시크릿은 바로, 오늘날 여성들이 입고 싶어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이름은, 세라 버튼(Sarah Burton), 피비 필로 (Phoebe Philo),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로, 지난 몇 시즌 부터 프랑스를 열광케 한 영국인 여성들이다. 피비 필로는 셀린느(Celine),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끌로에(Chloe)의 혁신을 이뤄냈으며, 세라버튼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모든 컬렉션 개발을 감독하며 그 명성을 이어왔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그룹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딸이기도 하며 2001년 자신의 하우스를 런칭했으며, 명성을 떨쳤다. 한편,프랑스에서는 부크라 자라르와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이 모던함의 페미닌 승리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다.
이상향 보다는 현실세계 추구
패션 역사학자인 플로렌스 뮬러(Florence Muller)는,"이들은 스스로를 복식계의 승려로 칭한다. 현 경제상황에서도, 이들은 의복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밝히며," 이들은 무가치 한것과 일회성에서 탈피하였으며, 여성들을 변장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일관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이들만의 기준을 적립해왔다. 이러한 점들은 이들의 디자인적 상상력을 제한하기보다는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왼쪽부터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세라 버튼(Sarah Burton)> 그렇다면, 패션계에 새로운 헤로인들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이들 이전에 많은 프랑스 여성디자이너들이 존재했었다. 1920년대에 여성의 몸을 단단히 졸라맸던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킨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1945년 2차대전 이후, 파리가 독립할 당시 당대 최고의 쿠튀리에였던 파퀸(Jeanne Paquin), 그리고 잔느 랑방, 코코 샤넬이 있다. 그밖에도, 엘사 스키아파렐리, 니나리치(Nina Ricci)뿐 아니라 아메리칸 룩의 창시자인 클레어 맥카델에 이르기 까지, 이들은 선구적인 쿠튀리에이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다.
의상장식 갈리에라 박물관(muse?e Galliera)관장인 올리비에 사이야흐(Olivier Saillard)는," 패션계에서 여성들은 항상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1950년대까지 꾸뛰르에서 여성들의 존재감은 대단했었다. 하지만 1960-70년대에 프레따 뽀르떼가 등장하면서,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 엠마뉴엘 콴(Emmanuelle Khanh), 크리스챤 바이(Christiane Bailly)로 대표되는 차세대 스타일리스트들이 등장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후 1980년대에는, 남성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극단적인 여성성이 강조된 판타지 속의 젊은 여성이 기준으로 제시되어 왔으며, 소통에 대한 이들의 욕구 또한 광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2000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밀레니엄 초반은 알렉산더 맥퀸, 디올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발렌시아가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등 남성디자이너들의 독주였다.하지만, 경제위기와 함께, ‘불가능 한것’과 ‘가능한것’ 사이의 균형잡힌 관계, 즉 새로운 작동법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프레따 뽀르떼는 점차 이성적으로 변모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여성디자이너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여성디자이너들은 꿈꾸던 디자인을 하는 대신에,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이 여성들은 1970년대에 런웨이가 아닌 ‘거리’의 옷을 입히던 선대 여성디자이너들의 후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와같이, 이상화된 여성상으로 부터의 탈출은 곧 현실로의 복귀라 할 수 있다. 뉴욕과 파리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자벨 마랑은," 나의 첫 번째 뮤즈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에 대한 모든것을 시도한다. 내가 디자인한 옷들로부터 다시 영감을 받는다."라고 말한다.실용적이면서도, 입고싶은,웨어러블한 옷.편안하면서도 엘레강스 한 옷. 이는 부크라 자라르가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다. 부크라 자라르는 2010년 그녀의 꾸뛰르 하우스 런칭이후, 오늘날 전세계에 60여개의 매장으로 확장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패션에디터들은 그녀의 정교함과, 섬세함,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라인을 예찬한다. 부크라 자라르는 최근에 미국의 패션유력지인 WWD(Women's Wear Daily)의 ‘내일의 탤런트(talent de demain)’에 수상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부크라 자라르는 " 컬렉션의 일관성이란 것은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나는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옷장속에 필수적인 의상들을 제공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멋있는 팬츠, 트렌치 코트, 가디건 스커트 세트 그리고 몸에 완벽하게 피트되는 블라우스 등이다. 혼란스럽지 않게 기준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고 밝혔다.
‘노멀’한 여성이 뮤즈
오늘날엔 방향성을 잃은 자아(ego)나 독창성이 더이상 트렌디 하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제는 간결함과 이성적인 판단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크함이나 모던함을 추구하는데 있어 장애물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인 피비 필로가 대대적인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초월적인 컬렉션을 추구한다 해도, 당장에 트렌디 함을 발휘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끌로에(Chloe) 2013 봄-여름 컬렉션>
오버사이즈, 과장된 실루엣, 절제된 색채와 울트라 그래픽적인 기법, 남성복 스타일은 매 시즌 컬렉션의 특성을 제대로 표현해 준다. 영국 여성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프랑스인에 가까운 이 여성 디자이너는 프랑스 쉬크를 그대로 재현해 낸다. 피비필로는 항상 ‘효과’가 아닌 퀄리티를, 그리고 그녀가 재미를 느끼는 것만 디자인 한다’고 강조한다.
셀린느의 카롤 베나제(Carole Benazet)는," 피비 필로는 브레인이면서도 심오하다. 그녀는 라인과 원단이 주는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또, 오라를 줄 수 있는 완전한 의상을 디자인 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녀는 거동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주는 의상은 절대로 디자인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스텔라 메카트니는 가장 영국적이고, 가장 가볍고, 페미닌한 룩을 추구 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옷은 항상 모든 여성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노멀’한 보통여성들이 모두 그녀의 뮤즈로써, 모든 워킹걸과 아이들의 엄마가 그녀의 컬렉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2011년부터 클로에 아시아 사장을 맡은 클레스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는," 나는 진정한 의미의 여성을 좋한다.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나의 친구들을 위해 디자인 한다고도 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을 위해 디자인 한다. 나는 이를 시스터 스타일(sister style)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여성디자이너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겸손함을 꼽을 수 있겠다. 자신만의 브랜드와 하우스를 런칭하고, 트렌드를 창조하는 파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하나같이 겸손하다. 이들의 성공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가령 스텔라 메카트니는 2012년에 아시아 지역의 매출이 30% 성장했다. 디자이너의 신념을 존중하기 위해 컬렉션에서 가죽과 털을 제외시킨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한편,셀린느도 3년 사이에 4억 유로 매출을 달성하며, 3년 사이에 매출액이 2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LVMH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1987년에 인수한 이후, 셀린느는 2008년 피비필로가 등장하면서, 아시아지역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었다.
‘걸스 넥스트 도어(girls next door)’
알렉산더 맥퀸의 오른팔 이었던 새라버튼(Sarah Burton)은 2010년 맥퀸의 사망이후 6시즌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맥퀸만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10월 이후, 알렉산더 맥퀸의 매장수는 늘어났으며, 홍콩과 마이애미,상하이, 런던지역에 5개 매장을 추가적으로 오픈했다. 새라버튼은 차분하고 조용한편인 39세의 영국 여성으로, 웨어러블 하지 못하며, 신드롬 일으킨다는 편견을 뛰어넘어, 꾸뛰르의 정신과 맥퀸만의 아방가르드적 요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한편, 리슈몽(Richemont)그룹의 계열사인 클로에(Chloe)도,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의 업적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 하고 있다. 클로에의 회장인 지오프리 보르도나이(geoffroy de la bourdonnaye)는," 그녀는 역동적이면서도, 신중하고 섬세하다. 이런 그녀가 아시아지역을 책임지게 되어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디바역할을 하면서도, 항상 준비하는 자세와 여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고 밝혔다.
여성디자이너들의 ‘시스터스타일’과 패션계의 막강한 남성적 자아중 둘중에 어떤것이 더 강할까? 패션 역사학자인 플로렌스 뮬러는,"그녀들의 가장큰 강점은 그녀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그녀의 또래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비젼을 갖고서 패션에 뛰어드는 것이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객 뿐 아니라 일상의 패션에 가장 근접한 디자이너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쉬크함을 겸비하고 있으며, 그것을 나눌 의무가 있는 ‘걸스 넥스트 도어 (girls next door)’인 것이다.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2013 봄-여름 컬렉션>
작성자: 패션넷코리아 프랑스통신원 이희경<gio9966@hotmail.com> |